‘하늘소망’은 공릉제일교회 예배 인도 찬양팀 이름이다. ‘하늘소망’은 주로 20대 청년들로 구성되어있다. ‘주로’라고 토를 단 이유는 내가 그 주로에 들어가지 못하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늘소망’의 또 다른 한 가지 특징은 청년이지만 좀 오래된 청년들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생활의 연식이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모태신앙이나 아동부 때부터 교회생활을 한 청년들이 대부분이다.
하늘소망찬양단에 구성원 중 모태신앙인 한 여자 청년이 있다. 찬양 소리가 크거나 화려한 음색은 아니지만, 함께 찬양 인도 자리에 서면 든든한 의지가 되는 자매이다. 학원 강사 생활로 바쁘고 피곤할 것 같기도 하건만, 매주 목요일 저녁에 있는 찬양단 연습에 늦더라도 꼭 참석 하고, 중고등부 교사를 포함한 다른 여러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자매이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인 자매가 아무 연락도 없이 주일 예배에 빠진 것이다. 무슨 문제가 있나 걱정이 되어 연락했더니 연락조차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서 연결했더니 하는 말이 한 주만 쉬겠다는 것이다. 그러지 말고 교회에 나오라고 했으나 자매는 알겠다고만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물론 교회에서 보이지 않았다. 다음 주에 별 일 없었다는 듯이 나타난 자매에게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묻기가 껄끄러워 그만 덮어둔 일이 있다.
청년 시기의 믿음 생활은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다. 그러나 또한 쉽게 흔들릴 수도 있는 시기가 청년의 때이기도 하다. 청년의 때를 지내던 나의 지난 10년간 신앙의 모습도 또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많은 은혜를 받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많은 상처도 받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럼 그때 왜 그렇게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면 여러 대답 중에서 뭘 잘 몰라서였다고 답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답일 것 같다. 하나님을 안다 하고 있었는데, 믿음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있었는데, 문제를 만나면 그간 알고 있던 하나님과 믿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문제에 치여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내 모습만 남는 것이었다.
출애굽기32장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내 청년의 때와 같은 모습이라 안타깝기만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괴롭히며 종살이 시키던 애굽사람들을 궁지로 몰아가며 멋지게 때려눕힌 하나님과 모세를 따라가기만 하면, 애굽의 삶보다 더 멋진 인생이 펼쳐질 것만 같아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나섰다. 이들이 그 참 뜻을 알고 나섰는지 모르고 나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따라나선 가나안의 길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길이었다. 애굽에서 나오기 전 하나님께선 이들을 자신의 백성 삼고, 친히 이들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어주신다고 선언 하셨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시내산에 이르러 이들과 언약을 맺으신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보물이 된다는 언약을 맺는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여호와의 말씀대로 다 하겠다고 약속한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하신 모든 말씀과 규례를 듣고, 다시 한 번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 대답의 참 뜻이 무엇인지, 그 대가가 무엇인지도 모른 체 말이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얼마가 안돼서 약속을 잊어버리고 무너져버린다. 하늘처럼 믿고 있던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러 시내산으로 올라 간지 40일이 다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신할 우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이 애굽에서 보아왔던,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자신들의 하나님을 눈앞으로 끄집어 낸 것이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자신의 동족을 죽여야 했으며, 40여년이라는 긴 시간을 광야에서 떠돌다가 죽어가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함이란 무지개 너머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이 아니다. 내 자아가 머릿속에 만들어낸 허상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행위이다. 진정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결단 했다면 마음과 삶에 칼을 들어야한다. 마음과 삶의 칼을 들고 자신의 혈육을 쳐내는 레위 백성의 쓰린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알아가며 부딪히며 방해하는 자아에 대한 처절한 자기 부인의 아픔이 따라야한다. 하나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잘못 섬겼던 모든 것을 잘라 내버려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은 이스라엘 백성의 비극이 내 삶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다. 하나님을 알기위한 연단의 아픔을 이겨내는 헌신 자만이 혼돈이 가득 찬 광야 같은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믿음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 출애굽기 32장29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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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이 깎여야만 글을 쓸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다듬으셔야 인생은 빛이 납니다. (07.03.30 1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