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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기준 - 사전 : 기본이 되는 표준, 일을 바르게 이루기 위한 틀
기준은 인간 삶의 모든 일에 적용된다.
사람들은
기준을 지킬 때 ‘바르다’라고 말한다. 또는 ‘정상적이다’라고 말한다.
기준을 어길 때 ‘어긋났다’라고 말한다. 또는 ‘비정상적이다’라고 말한다.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교수인 최영박사는 정신과적 정상을 4가지 개념을 통합해 고려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1. 건강하면 정상이다.
- 고통이, 불안이, 우울함이 없어야 정상이다.
2. 이상적인 상태가 정상이다.
- ‘사람이면 마땅히 그래야한다’는 기준을 지킬 때 정상이다.
3. 보통(평균)이 정상이다.
- 통계학적으로 보통 사람 안에 들어갈 때 정상이다.
4. 성장과 변화가 있을 때 정상이다.
-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성장하고 변화해야 정상이다.
기준은 이렇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틀이다.
당신 믿음생활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생활의 기준을 무엇이라 말씀하고 계실까?
사람들은 믿음생활의 기준을 사랑, 기도, 선교, 헌금, 구제 등이라고 꼽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믿음생활의 기준을 예배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 이유는 에덴에서 쫓겨난 인생의 첫 이야기가 예배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4:1~7을 보면 에덴이후 신인류 두 명이 나온다. 이 신인류의 첫 기록이 예배라는 것이다. 이 신인류 가인과 아벨이 예배를 드리기 전까지 삶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성경은 그 모든 일들은 기록하지 않고, 오직 예배사건을 먼저 기록하고 있다.
흔히들 예배에 관한 성경을 ‘레위기’라 생각한다. 그러나 예배의 정신이 가장 잘 나타난 성경은 창세기이다. 예배의 유익을 가장 구체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성경이 창세기이다. 예배의 결과에 대해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성경 또한 창세기이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예배의 모범인 모리아 산의 아브라함과 이삭의 예배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예배로 인해 아브라함을 의인이라 부르시고 약속을 성취시키셨다고 히브리서 11장과 로마서 1장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 또 벧엘의 예배로 인해 사기꾼의 인생에서 한민족의 조상이 되는 야곱의 모습을 창세기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성경의 첫 책, 첫 이야기는 ‘예배’였던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람이 이 땅에 창조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생령으로,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동물이 매주일 모여 예배드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직 영적인 존재인 사람만이 예배를 드릴뿐이다. 예배를 드릴 이유를 모르고 살아간다면 단연코 그 사람은 아직 영적인 존재가 아닌 동물적인 욕심에 끌려 살아가는 육적인 존재일 뿐이다.
또한 영적존재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바로 이 예배에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수가성에 살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여인은 남편을 무려 여섯 번이나 바꾼 여인이었다.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와 막장드라마가 판을 치며, 이혼왕국이 되어버린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보더라도 이 여인의 삶은 그리 녹녹하진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수가성 여인은 남편이 바뀌면 자신의 삶이 바뀌는 줄 알았다. 여자 팔자 뒤웅박팔자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여자였다. 그래서 남편을 바꾸고 또 바꿨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 남은 것은 동네사람들의 쑥덕거림과 손가락 질 뿐이었다. 이날도 수가성 여인은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뙤약볕이 내려쬐는 한 낮에 우물을 찾았다. 그때 이 여인을 찾아와 만나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이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만 인생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씀하신다. 인생의 문제는 하나님을 만날 때 해결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풀 수 없는 인생의 문제를 갖고 사는 영적존재인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한다. 그 만남의 자리가 예배이다.
모든 문제의 열쇠인 예배를 우리는 어떻게 드려야하는가?
예배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드리는 것이다. 창세기 4장의 가인과 아벨은 자신의 노력을 결과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아벨의 자신의 어린양을 예물 삼았다. 둘 다 다른 사람의 예물에 얹혀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예배를 보라. 가인의 예배가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가인만도 못한 예배를 드리지 않고 있는가? 봉사하는 부서의 예배에 앉아 예배드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찬양대의 준비된 찬양을 듣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의 예배 아니 이 시대의 예배엔 예배를 향한 땀방울, 노력의 결과물이 사라졌다. 이러한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는가? 그러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가 없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것이다. 회복과 치유가 없는 것이다. 남이 준비한 예배에 숟가락만 꽂는 것이 예배가 아니다. 예배를 향한 내 삶의 열매를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이것이 예배의 첫 조건이다.
이렇게 첫 조건인 헌신의 예물을 준비한 자는 누구나 예배를 드릴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따로 있다. 바로 아벨의 예배와 같은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희생하면 쉽게 고생, 고통을 생각하고 괴로운 찬양대 연습을 참아내기, 지루한 설교 들어내기 등을 생각하고 이를 성실하게 실천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희생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영적존재로 창조하셨다. 육적인 동물과 다른 영적인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은 육적인 희생에 머무르지 않는다. 육적 희생이 목적이 아니다. 영적 존재의 희생은 생명과 맞바꾸어 지켜낸 어린양을 드리는 희생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희생을 통한 열매를 드리는 것이다. 바로 내 생각, 내 자아, 내 욕심을 말씀 앞에 꺾어 버리고 얻는 순종의 열매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말씀에 의지하고 순종하여 내 생명 같은 자존심을 꺾고 삶을 살며 맺어지는 열매들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릴 때, 비로소 하나님은 모잘 것 없는, 내세울 것 없는 나를 받으시는 것이다. 이것이 참예배의 모습이다. 나를 받으신 하나님은 내 모든 문제를 하나님 자신의 문제로 삼으시고 해결하시는 것이다.
이런 희생의 열매 없이 내 땀을 하나님께 내세울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가인의 예배와 같이 외면하신다. 성경은 가인과 같이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사람은 악인이라 부른다. 아무리 화려하고 거창한 예배를 드린다하더라도 갈멜산의 바알선지자들의 예배같이 외면 받고 버림당하는 악인의 예배일뿐이다. 잠언 15:9은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고 교훈하고 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내 중심으로 드려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자.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문제를 들고 와 예배를 드려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이다.
아벨의 예배와 같이 보잘것없지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드려지는 예배는 히브리서 11:4 하나님께서 더 나은 예배라 말씀하신다. 더불어 그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를 의인이라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라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된다.
왜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없는 줄 아는가?
이유는 바로 예배와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 드리고 있지 않다니…. 바로 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내 자아를 향해 간절히 기도할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선 받으신 기도가 없기 때문에 이뤄주실, 응답하실 내용이 없는 것이다.
지난주일, 우리교회는 모처럼 야외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많은 청년이 함께 하지 않았다. ‘내가 교사가 아니니까’라는 마음으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니까’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길을 갔다. 많이 아쉬웠다. 예배당이라는 건물 속이 아닌 넓은 세상 한 가운데에서 모든 것의 운행자이신 창조주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와 부어주실 은혜를 놓쳤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요4:23은 하나님께서 육적인 욕심, 공로주의가 아닌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인 영적 예배를 드리는 자, 자신을 꺾고 희생의 마음으로 순종의 마음 되신 진리의 예수님의 마음으로 드려지는 예배와 예배자를 지금도 찾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영적이고 진리로 예배드리고 있음을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감동과 은혜의 차이를 아는가?
감동과 은혜는 마음의 울림을 말한다. 그러나 감동은 그 울림으로 끝이다. 하지만 은혜는 감동과 달리 생명이 있다. 둘 다 마음의 울림을 뜻하지만 감동은 그 울림만으로 끝나기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반대로 은혜는 그 울림을 삶으로 끌어들여 그 울림이 말하는 방향으로 살기에 열매가 있다.
하나님은 이 열매를 예배의 예물로 받으시길 원하신다. 우리가 참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것이고 은혜 받은 우리는 그 은혜로 주님 원 하시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 열매가 하나, 둘 우리 삶에 생명을 입히며 우리가 가진 문제의 해결 열쇠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을 지키는
정상적인 예배자라면 예배가 건강할 것이다. 예배드림이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예배자라면 마땅히 예배는 드려야 하는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정상적인 예배자라면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예배자들처럼 살아갈 것이다.
정상적인 예배자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예배로 인해 믿음이 성장하고 삶이 변화할 것이다.
하나님의 문제해결의 기준은 예배이다. 예배가 인생 최고의 목적 삼길 윈한다. 아벨과 같은 맘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가득한 청년공동체, 나 자신을 구원하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제자 ACTS29가 되길 소망한다.
잊지 말라. 예배에 성공하는 자가 인생에 성공한다는 것을….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구하는 우리가 되길….
[찬양] 모든 상황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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